
2025년 9월 미국에서 나온 한 정치적 발언을 계기로, 임신 중 타이레놀(아세트아미노펜) 복용이 자폐를 일으킨다는 주장이 빠르게 퍼졌습니다. 진료실에서 보면 임신부들이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은 늘 비슷합니다. 열이 나는데 약을 먹어도 되나, 혹시 아이에게 해가 되는 건 아닌가. 이 글은 어느 한쪽을 단정하기 위한 글이 아닙니다. 연관성을 보고한 연구와 그 한계, 그리고 가장 엄격한 설계의 최신 근거를 함께 펼쳐 두고, 발열과 통증을 방치했을 때의 위험까지 균형 있게 살펴보려 합니다.
논란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나
이번 혼란의 출발점은 새로운 결정적 증거가 아니라, 기존 관찰연구들을 다시 묶은 리뷰와 그에 얹힌 정치적 발언이었습니다. 인용된 일부 리뷰(예: Prada 등, 2025)는 임신 중 약 복용을 임신부의 기억에 의존해 측정했고, 용량과 복용 기간 정보가 부족했으며, 서로 다른 평가도구로 진단된 결과를 한데 섞어 분석했습니다. 이런 설계에서는 약을 먹은 이유 자체가 결과에 영향을 주는 잔여 교란이 남기 쉽습니다.
저자 이해상충을 둘러싼 논란도 제기되었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새로운 실험 데이터가 아니라 해석의 문제였다는 사실입니다. 같은 원자료라도 어떤 설계로 분석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결과의 방향성만 볼 게 아니라 연구가 교란을 얼마나 통제했는지를 먼저 따져야 합니다. 임신과 출산을 앞둔 분들이 약물 정보를 접할 때 이 점을 알아 두면, 자극적인 헤드라인에 흔들리는 일을 한결 줄일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은 임신 전 받아두면 좋은 검사 상담에서도 자주 다루는 주제입니다.
형제자매 대조연구가 보여 준 것
가장 주목할 근거는 2024년 JAMA에 실린 스웨덴 전수 코호트 연구입니다. 1995년부터 2019년까지 태어난 약 248만 명을 추적한 대규모 연구로, 전통적 모델에서는 자폐와 ADHD에서 아주 미세한 연관성(위험비 대략 1.05 안팎)이 관찰되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가족 안에서 형제·자매를 서로 비교하자 그 연관성은 사실상 사라졌습니다. 자폐는 위험비 0.98(95% 신뢰구간 0.94–1.02), ADHD는 0.98(0.95–1.01), 지적장애는 1.01(0.96–1.07)로 보고되어, 유전과 가정 환경 같은 가족요인을 통제하면 신호가 소실되었습니다. 자폐는 형제·자매 안에서 동반되는 경향이 강한 질환이라 가족기반 설계가 교란 통제에 특히 유리합니다.
형제·자매는 유전자와 양육 환경, 부모의 건강, 사회경제적 배경을 상당 부분 공유합니다. 그래서 형제 비교에서 연관성이 사라졌다는 것은 이전에 보이던 신호가 약 때문이 아니라 가족이 공유하는 배경 때문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일본의 국가 단위 대규모 코호트 연구에서도 같은 흐름이 확인되었습니다. 일반 모델에서는 양의 연관성이 보였지만 형제 비교로 분석하자 연관성이 사라졌습니다. 서로 다른 나라, 서로 다른 인구집단에서 같은 결론으로 수렴했다는 점은 근거의 무게를 더해 줍니다.
연관성 연구의 한계를 뜯어보면
관찰연구에서 약과 결과 사이에 신호가 보인다고 해서 곧바로 인과로 읽어선 안 됩니다. 임상 경험상, 같은 데이터도 한계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결론이 갈립니다. 주요 한계는 다음과 같이 정리됩니다.
- 노출 측정의 부정확성: 임신 중 복용을 사후 기억에 의존하면 회상편향이 생깁니다. 아이에게 질환이 있는 부모가 약 복용을 더 또렷이 기억하는 경향이 보고됩니다.
- 용량·기간·시기 정보 부족: 얼마를, 얼마나 오래, 임신 몇 주에 복용했는지를 모르면 용량-반응 관계를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 결과 정의의 불일치: 자폐와 주의력 문제를 서로 다른 평가도구로 묶으면 이질성이 커져 해석이 흐려집니다.
- 잔여 교란: 통증이나 발열이라는 복용 이유 자체(적응증 교란), 유전적 소인, 환경요인이 결과에 함께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 메타분석에서 상대위험 1.1에서 1.3 수준의 약한 신호가 보이더라도, 형제 비교나 음성대조 노출처럼 더 엄격한 설계에서 그 신호가 사라진다면 인과성 주장은 힘을 잃습니다. 근거는 결과의 방향만이 아니라 설계의 질로 판단해야 합니다.
주요 학회와 규제기관의 입장
전 세계 산부인과 학회와 약물 규제기관의 입장은 2025년 현재 일관됩니다. 적응증이 있을 때 적절한 용법·용량으로 사용하라는 권고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 기관 | 발표 시점 | 핵심 입장 |
|---|---|---|
| ACOG 미국산부인과학회 | 2025년 9월 | 인과관계는 입증되지 않았으며 임신 중 사용은 안전하다고 재확인 |
| SMFM 모체태아의학회 | 2025년 | 과학적 근거의 무게로 볼 때 인과성은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고 명시 |
| RCOG 영국 · FIGO 국제연맹 | 2025년 | 적응증 있을 때 1차 진통·해열 옵션으로 권고 유지 |
| FDA 미국 · EMA 유럽 · MHRA 영국 · TGA 호주 · Health Canada | 2025년 | 현행 사용 권고 유지, 인과성 확립 안 됨을 반복 명시 |
SMFM은 2025년 성명에서 임신부가 통증과 발열을 치료하기 위해 아세트아미노펜을 사용하는 것은 안심해도 된다는 취지를 밝혔습니다. 다만 FDA처럼 라벨 문구에 최신 연구 동향을 반영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같은 사안을 두고 기관마다 표현 수위가 조금씩 다르다는 점은 알아 두면 좋습니다.
약 복용이 걱정되어 결정을 미루고 계신다면, 채팅 상담으로 약물 사용 계획을 함께 점검해 보세요.
열과 통증을 방치했을 때의 위험
약을 무조건 피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생각은 흔한 오해입니다. 진료실에서 보면 이 오해 때문에 고열을 참다가 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임신 초기의 고열을 치료하지 않으면 유산, 신경관결손, 일부 심장기형 같은 위험 증가와 연관된다고 보고됩니다. 임신 중·후기에 지속되는 발열이나 통증을 방치하는 것도 조산, 태아 성장지연과 관련될 수 있습니다. 아세트아미노펜은 세계보건기구 WHO 필수의약품으로, 적절한 용량과 최단 기간으로 사용할 때 임신 중 표준 치료 옵션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선택지는 약이냐 무약이냐의 단순한 이분법이 아닙니다. 치료하지 않은 발열과 통증이 가져오는 실제 위험과, 방법론적으로 한계가 큰 연구에서 비롯된 이론적 우려를 함께 저울에 올려 판단해야 합니다. 임신 중 발열이나 통증을 동반하는 부인과 증상이 있다면 참기보다 진료를 통해 원인을 확인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실제 진료에서는 이렇게 안내합니다
핵심 원칙은 최소 유효용량을 최단 기간 사용하는 것입니다. 적응증은 발열, 특히 임신 초기의 발열 조절과 허용 범위 안의 통증 조절입니다.
반대로 피해야 할 것은 진료 없이 장기간 고용량으로 습관처럼 복용하는 패턴입니다. 불안이 크다면 대체 전략이나 용량 조정을 함께 상의할 수 있고, 기저질환과 동반약물, 임신 주수에 맞춘 개별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안전합니다. 임신 중 통증과 열은 몸뿐 아니라 마음도 소모시킵니다. 안심할 수 있는 근거와 현실적인 대안을 함께 드리는 것이 의료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임신과 피임 클리닉에서는 이런 맞춤 상담을 일상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자주 받는 질문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임신 중 타이레놀, 전면 금지해야 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적절한 용법·용량이라면 1차 선택지로 권고됩니다.
- 자폐 위험을 높인다는 뉴스가 맞나요. 형제 비교 같은 고품질 연구에서는 연관성이 소실되며, 인과성 근거는 현재로선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합의입니다.
- 해열제 없이 버텨도 될까요. 고열을 치료하지 않을 때의 위험이 더 분명합니다. 적절한 열·통증 조절은 임신부와 태아 모두에게 유익합니다.
정리하며
가장 엄격한 형제·자매 비교 설계까지 포함한 최신 근거는,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사용과 자폐 사이의 인과관계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근거의 중심에는 2024년 JAMA 스웨덴 전수 코호트(출생 약 248만 명) 형제 비교에서 위험비가 거의 1.0에 머문 결과가 있고, 일본의 대규모 연구도 같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진료 권고 또한 분명합니다. ACOG, RCOG, FIGO, SMFM과 주요 규제기관은 적절한 용법·용량을 전제로 임신 중 해열·진통 1차 약으로 아세트아미노펜을 계속 권고하며, 치료하지 않은 발열과 통증의 위험이 더 크다고 봅니다. 다만 임신 중 약물은 개인별 상황이 가장 중요합니다. 현재 복용 중인 약, 증상의 양상, 임신 주수까지 종합해 맞춤 사용 계획을 세우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뉴스 한 줄에 마음이 무거워지셨다면, 정확한 정보로 약물 사용 계획을 상담받아 보세요. 우아한여성의원은 여성의 몸과 마음을 함께 살피는 산부인과로, 임신과 출산 전후의 건강을 꼼꼼히 안내해 드립니다.

글쓴이: 이동희 대표원장 · 산부인과 전문의 · 의료진 소개 보기
최초 발행 2025년 9월 29일 · 마지막 검토 2026년 5월 30일
참고 자료: Ahlqvist 등 JAMA (2024), ACOG Practice Advisory (2025), SMFM Statement (2025), FIGO·Louwen 등 International Journal of Gynecology & Obstetrics (2025), EMA·FDA·MHRA·TGA·Health Canada 규제기관 입장 (2025)
본 글은 일반적인 건강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개별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증상이 있다면 진료를 통해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