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 폐경 호르몬치료를 권해드리면, 많은 분이 가장 먼저 "호르몬치료를 하면 유방암에 걸리지 않나요?"라고 되묻습니다. 오래전 한 대규모 연구가 발표된 뒤로 이 걱정은 깊게 자리잡았고, 그 영향으로 치료를 망설이거나 중단하신 분도 적지 않습니다. 임상 경험상 이 질문의 답은 "무조건 위험하다"도 "전혀 무관하다"도 아닙니다. 약제의 종류, 사용 기간, 시작 연령, 그리고 본인의 자궁 유무에 따라 위험과 이득의 저울이 달라집니다. 이 글에서는 막연한 공포 대신 근거를 바탕으로 그 저울을 함께 들여다보겠습니다.
두려움은 어디서 시작되었나
폐경 호르몬치료에 대한 오해의 상당 부분은 2000년대 초 발표된 대규모 임상연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당시 결과가 언론을 통해 단순화되어 전해지면서, 호르몬치료는 곧 유방암이라는 인상이 굳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연구는 평균 연령이 높은 집단을 대상으로 했고, 지금은 잘 쓰지 않는 특정 약제 조합을 사용했습니다. 이후 20년 넘게 같은 자료를 다시 분석한 연구들이 이어지면서, 처음의 단정적 해석은 상당히 다듬어졌습니다. The Menopause Society(구 NAMS)는 2022년 입장문에서, 호르몬치료와 관련된 유방암 위험은 절대값으로 보면 작은 수준이며 약제와 기간에 따라 다르다고 정리했습니다.
진료실에서 보면, 두려움의 크기는 실제 근거보다 "옛날에 위험하다고 들었다"는 기억에 더 좌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궁이 있느냐 없느냐가 갈림길
원장으로서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자궁이 남아 있는지 여부입니다. 이것이 어떤 약을 쓸지, 그리고 유방암 위험이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를 결정하는 첫 번째 갈림길이기 때문입니다.
자궁이 있는 분은 에스트로겐 단독요법을 쓰면 자궁내막이 두꺼워지고 자궁내막암 위험이 올라갈 수 있어, 프로게스토겐(황체호르몬)을 함께 사용합니다. 반대로 자궁절제술을 받아 자궁이 없는 분은 에스트로겐 단독요법이 가능합니다. 이 차이가 중요한 이유는, 여러 재분석 연구에서 두 방식의 유방암 신호가 서로 달랐기 때문입니다.
| 구분 | 주로 쓰는 약제 | 유방암 관련 신호 |
|---|---|---|
| 자궁 있음 | 에스트로겐 + 프로게스토겐 | 장기 사용 시 위험이 다소 늘 수 있다고 보고됨 |
| 자궁 없음 | 에스트로겐 단독 | 위험 증가가 뚜렷하지 않거나 오히려 낮게 보고된 연구도 있음 |
미국 Women's Health Initiative의 장기 추적 분석(JAMA, 2020)에서는 에스트로겐 단독요법을 받은 자궁절제 여성에서 오히려 유방암 발생이 낮게 관찰되었고,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토겐 병합요법에서는 위험이 다소 증가하는 방향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호르몬치료"라는 한 단어 안에도 결이 다른 두 길이 있는 셈입니다.
사용 기간과 시작 시점이라는 변수
위험을 좌우하는 또 다른 축은 "얼마나 오래" 그리고 "언제 시작했는가"입니다. 같은 약이라도 단기간 쓰는 경우와 십수 년 이어 쓰는 경우는 다르게 봐야 합니다.
영국 NICE 폐경 가이드라인(NG23, 2024 개정)은 병합요법을 오래 사용할수록 유방암 위험이 점진적으로 커지는 경향이 있다고 보고합니다. 다만 이는 누적적·점진적인 변화이며, 짧게 사용한 경우의 추가 위험은 매우 작은 수준으로 설명됩니다. 또한 치료를 중단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위험이 점차 배경 수준으로 돌아가는 흐름도 함께 보고됩니다.
시작 연령도 중요합니다. 폐경 직후, 대체로 60세 이전 또는 폐경 후 10년 이내에 시작하는 "기회의 창(window of opportunity)" 시기에는 위험 대비 이득의 균형이 더 우호적이라는 것이 여러 학회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갱년기 증상이 시작되는 시점을 놓치지 않고 점검하시는 편이 좋은 이유입니다. 본인의 갱년기 증상이 어느 단계인지 궁금하다면 진료를 통해 시작 시점을 함께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호르몬치료 시작 시점이 궁금하다면 상담하기우리나라 여성에게 그대로 적용해도 될까
호르몬치료와 유방암을 다룬 대표적 연구들은 주로 서구권 여성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미국·유럽에 비해 유방암 발생 빈도 자체가 다른 양상을 보이고, 평균 폐경 연령이나 체형 분포도 차이가 있습니다.
대한폐경학회는 이런 인구집단의 차이 때문에 서구 연구 결과를 한국 여성에게 그대로 옮겨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과거의 고용량·고정 용량 방식과 달리, 최근에는 개개인에게 맞춘 저용량 위주의 처방이 쓰이면서 위험이 더 낮아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 연구 대상 인구와 우리나라 여성의 위험 배경이 다릅니다
- 사용하는 약제 용량과 제형이 과거와 달라졌습니다
- 같은 "호르몬치료"라도 개인별 위험 요인에 따라 해석이 달라집니다
이런 이유로, 통계 수치를 그대로 자신의 위험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본인의 상황에 맞춘 해석이 필요합니다.
유방 물혹이 있으면 치료하면 안 될까
진료실에서 자주 받는 또 다른 질문이 유방 물혹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단순 물혹 자체는 호르몬치료의 금기사항이 아닙니다.
다만 유방 조직검사에서 비정형 증식증(atypical hyperplasia)이나 관내유두종(intraductal papilloma) 같은 소견이 확인된 경우에는 주의가 필요하며, 유방 진료과와 상의하면서 신중하게 결정합니다. 따라서 물혹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치료를 미리 포기할 필요는 없고, 어떤 종류의 소견인지 확인하는 과정이 먼저입니다.
"물혹이 있으면 호르몬치료는 못 하나요?"라는 질문에는, 물혹의 종류부터 확인하자는 답이 가장 정확합니다.
호르몬치료의 안전성과 적응증이 더 궁금하다면 호르몬 치료가 필요한 경우와 호르몬 치료의 안전성을 함께 참고하시면 도움이 됩니다.
검진은 호르몬치료와 무관하게 챙기기
호르몬치료를 시작하면 유방 검진을 더 자주 받아야 하는지 묻는 분이 많습니다. 권고의 핵심은 호르몬치료 여부와 상관없이 정기 검진을 지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40세 이상 여성에서는 1년에 한 번 유방 검진을 받도록 권고됩니다. 호르몬치료를 받는 분들이 검진을 더 성실히 챙기다 보니, 이상 소견이 비교적 이른 시점에 발견된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정기적인 갱년기 검진과 유방 검진을 함께 가져가는 것이 안심하고 치료를 이어가는 토대가 됩니다.
폐경 이후의 전반적인 건강 관리는 호르몬뿐 아니라 골밀도, 대사, 혈관 건강까지 함께 살피는 일이기도 합니다. 필요하다면 갱년기 호르몬 클리닉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점검하실 수 있습니다.
결국 답은 개별화입니다
폐경 호르몬치료와 유방암의 관계는 "위험하다/안전하다"의 이분법으로 답할 수 없습니다. 자궁 유무, 약제 종류, 사용 기간, 시작 연령, 그리고 개인의 위험 요인을 종합해 저울질해야 합니다.
증상으로 삶의 질이 떨어지는데도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치료를 미루는 것도, 위험 요인을 살피지 않고 무작정 시작하는 것도 권하지 않습니다. 임상 경험상 가장 안전한 길은, 전문의와 함께 본인의 이득과 위험을 구체적으로 따져 결정하는 것입니다. 망설여진다면 호르몬치료에 대한 궁금증을 편하게 상담하시고, 본인에게 맞는 선택을 함께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가족 중 유방암 환자가 있는 경우 호르몬치료를 어떻게 판단하는지 이어서 다루겠습니다.
글쓴이: 이동희 대표원장 · 산부인과 전문의 · 의료진 소개 보기
최초 발행 2022년 3월 3일 · 마지막 검토 2026년 5월 30일
참고 자료: The Menopause Society(NAMS) Hormone Therapy Position Statement (2022), NICE Menopause Guideline NG23 (2024), Women's Health Initiative Long-term Follow-up, JAMA (2020), 대한폐경학회 폐경여성을 위한 지침서
본 글은 일반적인 건강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개별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증상이 있다면 진료를 통해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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